신뢰를 바탕으로 확장하고 확장되는,
순천 밀크로드(milkroad) 캠페인 2부

밀크로드 4년차, 모르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올해로 밀크로드 캠페인은 4년차에 접어들었다. 4년차가 돼서 느낀 변화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종이팩을 모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제 막 오픈한 가게에서 종이팩을 모아 오시기도 한다. 누가 창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순천에 밀크로드라고 종이팩을 모으는 곳이 있다던데 너도 참여해 봐라”라면서 밀크로드 캠페인을 소개해주는 분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연결되는 사람들이 늘었다.

 

올해는 순천시와 함께 종이팩 수거 공간을 마련해서 ‘종이팩 정거장’이라는 이름으로 플랫폼을 운영할 계획이다. 유익한 상점에서 열 걸음 걸어가면 창고가 나오는데 공간이 꽤 넓다. 앞부분을 정비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포토존처럼 사진도 찍고, 종이팩이 모인 걸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편하게 왔다가 종이팩에 대해 알고 가면 좋지 않을까? 종이팩 정거장이 생기면 밀크로드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지금보다 편하게 종이팩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종이팩 정거장 사진: 좌 – 시공 전 / 우 - 시공 후>

유익한 파트너스를 비롯한 각 공간에 설치할 수 있는 종이팩 수거함도 만들었다. 지금은 두꺼운 종이로 제작했는데 파트너들이 사용해보더니 점포에서는 물 닿을 일이 많으니 플라스틱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다. 또 매장 안에 비치해야 하니 수거함이 오픈된 형태면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존에 제작해 놓은 종이팩 수거함이 모두 판매되면 파트너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다.
(이 내용을 빼거나 다르게 쓰는는 게 좋을까요? - 현재 종이팩 수거함 판매를 위해?)

<사진: 종이팩 수거함 모습>


지원사업에 의존 말고 독립해야


초기 모델이 유익한 파트너스와 개인이 모아서 가져다준 종이팩을 부림제지로 보내는 거였다면, 다음 모델로 유익한 상점과 유익한 파트너스로 함께 하는 가게를 통해 종이팩 수거함과 재생 화장지를 소개하는 방식을 구상했다. 종이팩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종이팩을 재활용해 만든 각 티슈 형태의 테이블 티슈를 도매로 거래하고 싶어서 부림제지 쪽에 문의했더니 적치할 창고가 있는지 물어왔다. 생각보다 휴지 부피가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소매로 시작하겠다고 답했지만 지금은 재생 화장지에 관심 있는 소비자도 있고, 임차 공간이지만 적치 공간도 있으니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

캠페인 초기만 해도 부림제지는 우리에 대해 알지 못했다. 마치 짝사랑하듯 우리만 부림제지를 알고 있었다. 밀크로드 캠페인을 시작하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생협 생산자 간담회에 부림제지 상무님이 오셔서 생산자와 제품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날 천연 펄프로 만든 화장지에 형광물질이 많다는 점과 천연 펄프와 재생 펄프의 차이를 알게 됐다. 그길로 생협에서 판매하는 재생 휴지를 종류별로 사용해봤다. 2겹, 3겹, 키친 타올 등 여러 재생 휴지를 써보고 내린 결론은 ‘천연 펄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지 않은 게 아쉬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재생 휴지를 직접 사용해볼 기회가 생긴다면 재생 휴지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지 않을까?’ 처음에는 종이팩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재생 화장지를 나눠주어 사용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종이팩을 화장지로 교환해주는 사업은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멤버들도 소비자로서, 참가자로서 휴지 아닌 다른 물건을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할 것 같은 물건을 넣어보았다. 삼베수세미도 넣고, 대나무 칫솔도 넣고 하다 보니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종이팩을 화장지로만 교환하게 하는 고정관념을 탈피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떠넘기듯 교환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재생 화장지를 받아들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싶었다. 테이블 티슈를 유익한 파트너스 참여 점포에 비치해서 그곳을 찾는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모델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재생 휴지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재생 화장지를 사용하고, 가게에서 나온 종이팩이 수거함에 차곡차곡 모이는 모습을 보다 보면 종이팩 재활용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조금씩 종이팩 재활용에 동참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밀크로드 캠페인의 볼륨을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 멤버들과 고민하고 있는 지점은 우리만의 수익 모델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밀크로드 캠페인을 30년 동안 지속하려면 수익 모델이 필요하다. 나중에는 종이팩 재활용이 고부가가치산업이 되었으면 한다. 보조금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도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으려면 재정적으로 독립할 필요가 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가 생긴다


요즘에는 종이팩 다음을 생각하고 있다. 주목하고 있는 것은 플라스틱이다. 최근 이마트에서 하는 ‘플라스틱 감축 회수 캠페인’을 전국화 하는 프로젝트의 한 꼭지를 담당하게 됐다. ‘가플지우’라고, 풀어쓰면 ‘가져와요, 플라스틱. 지켜봐요, 우리 바다’가 된다. 쉽게 말하면 연안을 끼고 있는 지역의 이마트 임직원들과 함께 연안정화봉사활동을 해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프로젝트다. 원래는 남해와 서해만 맡기로 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동해, 서해, 남해 그리고 제주까지 담당하게 됐다. 우리 팀은 현장 관련 업무를 맡았다. 그 덕에 연안지역을 조사하며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연안에 쌓인 쓰레기 중 스티로폼, 페트병, 비닐이 제일 많은데 페트병 하나라도 잘 회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플라스틱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밀크로드 캠페인과 연결지어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연안지역을 조사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 4년 동안 종이팩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집중했으니 종이팩 정거장에 페트병을 더해 확장을 해보면 어떨까? ‘밀크로드, 페트병을 만나다’라는 타이틀로 활동을 확장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가 가플지우 운영사로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손에 잡히는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꾸준히 종이팩을 모아온 것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온 셈이다. 남들 눈에는 종이팩을 모으는 일이 손만 많이 가고 돈도 안 되는 작업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4년 정도 해보니 어느 순간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무엇보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생기는 것 같다.



너네는 인공지능, 우리는 인간지능


유익한 상점에 수퍼빈(SuperBin) 관계자가 자주 놀러 온다. 우리가 종이팩 모으는 걸 신기하게 생각하는 친구다. 그 친구가 페트병과 캔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IT 시대에 IT기술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팀은 필요하다. 자원순환은 재미있고, 첨단이 힘을 보탤 때 더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퍼빈 관계자를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너네는 인공지능, 우리는 인간지능이지만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가 끊기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수퍼빈이 모든 쓰레기 문제에 집중할 거라고 들었다. 활동 영역이 겹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다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 돈만 있으면 종이팩 회수 기계를 개발해 주라고 하고 싶다.

결국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술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가져다줄 장소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재활용 자원을 모아서 가져다줄 수 있는 곳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하다 보니 그 이후 시간대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싱가폴은 오전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한국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한다. 혁신이라는 단어가 버겁기는 하지만 더 많은 혁신 사례가 필요한 이유다.


화이팅을 외치고 있는 밀크로드 팀원들


해 봐야 안다


자원순환 영역은 경험을 해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경험을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 사이의 차이는 크다. 순천에 네프론 기계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이마트 공병 회수함이 나왔을 때에도 직접 사용해봤다. 종이팩도 그렇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생협에 종이팩을 모아 가져다 주었던 경험이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벤트를 많이 엮으려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잘 하는 걸 자연스럽게 매치하는 거다. 비영리실무자 대상 워크샵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기업 관계자가 한 말이었는데 “의미의 70%를 재미로 바꾸고, 의미는 30%만 남겨두면 사람들이 온다”라고 했다.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가볍고 재미있고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면 되지 않을까?

 

유익한 상점에 3개월에 한 번 꼴로 종이팩을 가져다주러 오는 손님이 있다. 엄청 열심히 종이팩을 모아 가져다주신다. 타지에서 종이팩을 들고 찾아오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좋아해주는 이유는 딱 하나다. 종이팩을 모으고 있다는 동질감 하나로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가끔 놀란다. 종이팩을 모아달라고 하면 안 하실 것 같은 분들이 오히려 더 순수하고 열심히 모아주시기 때문이다. 매번 느끼지만 종이팩은 대화의 시작점이자 관계의 출발점 같다.

 

결국 경험의 차이다. 경험치의 차이가 도드라지는 대표적인 장소는 학교다. 신대지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종이팩 분리배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여름방학 전까지 우유팩을 열심히 모아서 유익한 상점에 가져오면 신대지구 학생들에게는 화장지 1롤을 주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한 명의 어린이가 우유팩을 들고 엄마와 함께 유익한 상점을 찾아왔다. 엄마가 이제 그만 버리자고 해도 안 된다면서 “엄마보다 내가 지구에 더 오래 살아야 하니까 이 우유팩을 유익한 상점에 가져다줘야 해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어린이는 1년 뒤에 다시 찾아와서 밀크로드에 참여했던 경험을 글로 써서 환경 관련 상을 받았다며 자랑했다. 지금은 3~4개월에 한 번씩 방문한다. 그렇게 찾아오는 어린이들이 꽤 있다.

 

공공기관에서 학교를 커버해주면 좋겠다. 종이팩 배출량이 많기도 하고, 함께 하고 싶다는 선생님들도 제법 있는 탓이다. 예전에는 공공기관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고수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못 하면 공공기관이 공동주택과 학교 단위를 담당해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종이팩 분리배출을 재미있고 가볍게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거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할 테니 지자체도 함께 바뀌어주면 좋겠다.


“재미있어요, 지금까지는.


이걸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도 비즈니스를 잘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