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팩 수거함, 어디까지 알아봤니?
광주광역시 종이팩 수거함 실태조사 (광주자원순환협의체)

김싱싱     광주자원순환협의체 활동가

최미옥     소비자기후행동 공동대표


자원순환의 중요성 vs 실천의 장벽


2018년 대한민국에서 큰 문제로 떠오른 쓰레기 대란을 겪은 광주에서는 생활 폐기물을 줄여보자는 취지로 2019년에 ‘광주형 생활 쓰레기 제로 네트워크 시민실천단’이 발족되었다. 이듬해인 2020년 ‘광주형 자원순환 협의체’로 재정비하면서 민・관전문가가 모여 쓰레기 감량, 재활용 활성화 및 녹색소비 확산을 위한 자원순환 정책과 시민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한편, 마을공동체 활동가들의 자원순환 역량을 강화하고자 자원순환 해설사 양성과정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마을공동체에서는 자원순환과 쓰레기 분리배출 실천의 중요성이 점차 확산되었고 자원순환 협의체 위원인 카페라떼클럽 활동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마을마다 종이팩 모으기’가 예상을 뛰어넘는 호응과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종이팩을 잔뜩 모아놨지만 정작 배출할 곳이 없는 현실에 부딪혔다. 종이팩을 하나하나 모으고 씻어서 펼쳐 말렸으나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종이에 섞어 배출하자니 그동안 노력한 수고가 너무 아깝고, 뉴스에서는 시민들이 분리 배출한 재활용품이 수거 과정에서 마구 섞여 재활용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니 무언가 체계적인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카페라떼클럽은 종이팩 분리배출을 활성화하려면 전용 수거함 운영 실태를 파악한 뒤 시민들에게 홍보해야 한다며 종이팩 수거함 조사 활동을 제안했다. 자원순환 실천은 협의체 안에서만 이뤄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광주 전체의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더욱이 그동안 협의체 위원들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사업이 없었는데, 종이팩 수거함 조사 활동은 자신이 속한 마을 단위로 참여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처음에는 종이팩 수거함 조사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던 활동가들은 막상 직접 현장을 돌며 눈으로 현황을 확인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기록하는 것에 의미를 두며 열심히 참여했다. 환경부가 2023년 하반기에는 종이팩 분리배출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그 이후의 변화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함께라서 할 수 있었던 조사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광주광역시 자원순환과를 통해 5개 자치구(광산구, 남구, 동구, 북구, 서구)의 종이팩 수거함 배포 현황 자료를 받았다. 모두 엑셀 파일로 제공되었고, 양식은 제각기 달랐다.


이 과정에서 각 구의 사정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자치구는 공동주택 전체에 수거함을 설치하려고 했는데, 반대하는 곳이 많아 선별적으로 설치했다고 했다. 또 다른 구는 공동주택에서 계약한 재활용품 수거 민간 업체가 종이팩을 별도 수거하길 원치 않아 배포한 수거함을 치우는 일이 왕왕 벌어지다보니 자치구에서 배포한 수거함 목록과 현재 운영 실태가 달라 공개를 꺼린다는 말도 들었다. 심지어 어떤 구는 공동주택 20개소에 종이팩 수거함을 수시로 접수받고 배포했는데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아 배포 자료가 없다고도 했다. 종이팩의 대우(?)가 여기서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어찌됐든 5개 구의 자료를 한데 모으고, 지역의 소비자생협과 광주광역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배포한 수거함 자료까지 모두 취합했다. 5개구 공동주택 563곳에 배포된 수거함 733개, 거점공간 103곳에 141개, IoT 스마트 기계는 17대, 소비자생협은 20곳으로 파악되었다. 자료상으로는 703곳에 약 911개의 종이팩 수거함이 있는 셈이었다. 종이팩 수거함을 찾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광주에 911개 수거함이 있다니?! 배포된 수거함이 제 역할을 하는지 이제는 직접 찾아가 봐야 할 터였다.

먼저 5개구에서 확보한 데이터 목록에 일련번호를 매겼다. 자치구, 공간(공동주택, 거점공간, 생협, IoT형태) 등을 구분해 정리하고 이후 조사 결과를 입력할 온라인 조사지를 만들었다. 조사지는 다음과 같이 구성하였다. 1) 자치구 구분 2) 공동주택/거점 등 장소 구분 3) 공동주택의 경우 아파트명 입력 4) 주소 입력 5) 수거함 실제 설치 여부 표시 6) 수거함 수량 입력 7) 아파트 내 수거함 위치 8) 종이팩 분리배출법(씻고 펼쳐 배출) 안내 유무 9) 조사하면서 파악한 그 외 사항을 입력하게 했다. 거점 공간의 경우 아파트명 대신 거점 공간명(단체명)을 적고, 수거함이 시민 누구나 배출하도록 개방하는지 여부, 기록 장부 유무, 운영시간과 담당자 정보를 추가로 입력하도록 하였다. 종이팩 수거함 설치 장소가 드러나도록 사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안녹색소비자연대에서 진행한 종이팩 수거함 조사 사례를 참고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 조사팀을 꾸렸다. 원활한 조사를 위해 구 별로 관리할 담당자를 정했다. 담당자는 협의체 위원들이 맡아주었고, 이들은 다시 마을을 조사할 팀원들을 각각 구성하였다. 종이팩 수거함 조사에는 총 32명의 마을 활동가가 동참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났을 텐데 함께라서 할 수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는 마을 활동가들의 신원을 보장하기 위해 광주광역시청 자원순환과에서 보낸 조사 관련 공문과 함께 활동가 명찰을 배포했다. 각 조사팀별로 배정된 수거함 설치 주소를 하나씩 방문하고, 개별 방문 결과를 바로 구글 양식에 작성했다. 32명의 데이터를 쉽게 모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어도 조사현장에 나가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의외로 조사를 하며 어려웠던 순간은 자료에 입력된 아파트 이름이나 주소지 정보가 실제와 다를 때였다. 가령 광주교도소가 위치한 교정 아파트는 아파트 어디에도 ‘교정아파트’라고 적혀있지 않았다. 또 어떤 경우는 주소 자체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었다. 행정에서 받은 데이터의 주소 정보조차 다시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관리가 되고 있는 수거함들

통계와 현장의 차이


조사를 통해 각 자치구의 종이팩 수거함 형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구에 배포된 종이팩 수거함은 지붕 모양 우유팩 모양을 하고 있어서 별다른 설명 없이도 종이팩을 배출하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부가 보이지 않게 사방이 막혀 있는 구조로 제작되어 있어서 종이팩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었는지, 다른 쓰레기와 섞여 있지는 않은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관리가 힘들어 수거함 옆에 별도로 투명한 비닐을 설치해서 종이팩을 수거하는 곳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종이팩 수거함에 적힌 ‘종이팩’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청소도구함으로 활용하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방치해 둔 사례도 있었다.


수거함 내부를 살펴보면 공동주택의 경우 경비원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가 눈에 보인다. 공동주택에서 나오는 종이팩의 80% 가량은 이 분들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종이팩 수거함이라고 적혀 있지만 종이팩을 씻고 펼치고 말려서 배출한 주민보다 물로 씻지도 않고 배출한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결국 공동주택에서 종이팩을 제대로 배출하려면, 경비원이 일일이 수거함에 들어가 있는 종이팩을 꺼내서 헹구고 펼치고 말리는 작업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경비원은 “주민들이 잘 배출할 수 있도록 배출 방법을 홍보해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했다가 관리가 어려워 치웠다는 곳도 여럿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비해 적은 수의 종이팩 수거함이 설치되어 있어 불만인 곳도 있었다.


행정에 남아있는 건 종이팩 수거함을 배포한 숫자뿐. 구에서는 종이팩 수거함 설치를 원하는 곳이 있으면 수거함을 배포하고, 그 뒤에 제대로 운영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지도하거나 다시 살펴보지 않는다. 구에서 관리하는 자료가 엉망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한 아파트명이나 거점 장소가 아닌 수거함 신청 민원인의 이름을 기입해 둔 곳도 있었다. 행정은 종이팩 수거함 배포 뿐 아니라 설치된 수거함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관심을 계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제대로 관리 되지 않는 수거함들

종이팩 수거함 조사 이후


종이팩 수거함 조사 결과 사업 목적에 맞게 수거함이 설치된 공간은 공동주택의 경우 360곳에 500개의 수거함, 거점공간의 경우 42군데에 42개로 집계됐다. 처음 행정에서 받은 데이터로 확인된 703곳 약 911개 수거함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공동주택, 거점공간, IoT수거함까지 설치되었던 종이팩 수거함의 실질 운영률은 60%인 것이다.


이 결과를 가지고 시민들에게 종이팩 수거함 설치 현황과 위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카카오맵 어플을 활용해 지도를 만들었다. 온라인 지도 작업은 카페라떼클럽에서 맡아 진행했다. 주소를 하나하나 검색해 위치를 찍고, 몇 동 앞에 수거함이 설치되어 있는지 표기하는 작업을 몇날 며칠 반복했더니 ‘광주광역시 종이팩 수거함 지도’가 만들어졌다.

*지도 바로가기 (클릭 →): bit.ly/광주종이팩수거함

종이팩 수거함 지도 안내용 카드뉴스

그간 열심히 발로 뛰어 조사한 결과를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하다 2021년 12월에 종이팩 자원순환 간담회를 열었다. 광주광역시 자원순환과와 5개구 재활용 업무 담당자, 자원순환 활동가들이 종이팩을 주제로 모인 자리에서 자원순환협의체가 진행한 종이팩 수거함 조사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간담회 과정에서 광산구와 북구 담당자는 우리 쪽 질의에 적극적으로 답했다. 나머지 3개구 담당자는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기억이 난다.


간담회 이후 조사 결과 데이터(행정에서 배포한 수거함의 실제 운영 여부)를 공유하자, 광산구 담당자 경우 전화를 걸어 궁금한 걸 묻기도 하고, 2022년도 사업에 조사 내용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종이팩 수거함이 잘 운영되지 않는 곳은 시정조치 하겠다, 수거함이 잘 운영될 수 있게 독려하겠다, 수거함을 사용하지 않는 곳은 가져와서 필요한 곳에 재배포하겠다고도 말했다. 이중 몇 가지가 반영되었는지 다시 확인해볼 예정이다.

 

종이팩 수거함이 배포된 목록을 보며 한 곳 한 곳 직접 운영 실태를 확인하러 다닌 광주 시민들의 걸음이 모여 종이팩 수거함 온라인 지도가 만들어졌다. 함께 조사활동을 펼친 활동가들 역시 자신의 활동의 결과가 데이터와 지도로 나타나니 더욱 뿌듯해했다. 정책 모니터링은 시민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소통 방식이 아닐까 싶다.

 

환경부의 종이팩 재활용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은 요원하기만 하다. 환경부의 법과 제도의 변화에 따라 각 지자체 담당자들의 업무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종이팩에 진심인 활동가와 시민들이 언제든 쉽게 지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함께하는 행동이 필요하리라 본다. 깨어있는 시민과 활동가가 종이팩 재활용 제도에 만족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으샤으샤 연대하리라.

더 알아보기
  • 광주자원순환협의체 greengj@hanmail.net
    (광주광역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 광주 종이팩 수거함 지도 (카카오맵)  bit.ly/광주종이팩수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