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귀뿌귀(즐거운 귀찮음 뿌듯한 귀찮음) 합시다!
개운초의 팩모아 캠페인 이야기

이진수
서울 개운초등학교 교사


팩모아 캠페인은 성북구 혁신교육지구사업에서 만난 학교 담당자와 마을 주민이 숲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종이팩 분리배출 캠페인이다. 종이팩을 재활용하면 탄소 흡수원인 나무를 살릴 수 있고, 여러 그루의 나무를 살리면 숲을 지킬 수 있는 생태적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학교와 가정, 마을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형태로 기획됐다. 팩모아 캠페인을 이끌어 온 서울 개운초등학교 이진수 선생님의 활동 이야기를 만나본다.


팩모아 레벨 업Level Up!


팩모아 캠페인은 마을과 학교가 함께 마을 교육과정을 만드는 성북구 혁신교육지구사업인 동교동락 추진단에서 만난 사람들로 이루어진 동아리 활동에서 출발했다. 주민 한 분이 인터넷에서 본 ‘종이팩 모으기’ 활동을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거 및 보상 모델은 간단하다. 반 복도에 ‘팩모아 본부’를 차려 놓고 개별 학생별로 종이팩을 가져오면 종이팩 교환 통장에 도장을 찍어준다. 한 줄 다섯 개를 채울 때마다 레벨 업. 레벨을 달성할 때마다 상품을 준다. 이벤트처럼 접근했지만 반응은 좋았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이 혼재된 혼란한 시기였다. 학년별 출석 요일이 지정되어 있을 때라 종이팩 모으기에 참여할 수 있는 학년군이 제한적이었다. 전 학년이 골고루 참여했지만 유독 저학년 학생들의 참여율이 높았다. 게임처럼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라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홍보는 가정통신문으로 진행했다. 정성껏 작성한 가정통신문을 e알리미와 클래스팅, 서면으로 보내 가정에서 배출되는 종이팩을 모아 학교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다. 종이팩을 수거하는 팩모아 본부는 교실 앞 복도에 차렸다. 쉬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종이팩을 들고 와서 이름을 적고, 교환 통장에 도장을 찍어 갔다. 학년 별로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이 달라 수업을 하고 있는데 종이팩을 가져다주러 교실에 찾아온 학생도 있었다.

카드뉴스 형태의 귀여운 홍보물들

처음에는 본부를 직접 운영했다. 수업하고, 업무 보고, 회의하는 중간중간 본부를 운영했는데 학생들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쉬는 시간이 학년별로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업무를 봐야 해서 본부를 비울 때면 반 아이들이 대신 안내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반 아이들과 함께 본부를 운영하게 됐다.

팩모아 친구, 패밀리, 히어로로 올라가는 레벨마다 동아리 사업 예산으로 준비한 물품 중 하나로 교환해줬다. 교환 품목은 비누, 수세미, 코끼리 똥 노트, 커피박 연필, 되살림 휴지 등 다양했다. 학생들은 교환 통장에 도장이 한 줄씩 채워질 때마다 즐거워했다.


요원을 뽑자, 분업화를 하자


교사가 직접 본부를 운영했던 첫해와 달리 두 번째 해에는 팩모아 요원을 뽑아 분업화를 시도했다. 고학년을 중심으로 팩모아 요원을 뽑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담당 교실을 나눴다. 한 반에 두 명의 요원을 배치했는데 대부분 자기 반 하나, 저학년 반 하나를 담당했다. 2021년은 부분 등교 상황이었고 팩모아 요원들의 활동도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선 각 반 신발장 한켠에 ‘팩모아 장소’ 표지를 붙였다. 학생들이 종이 가방에 종이팩과 교환 통장을 넣어 팩모아 장소에 두면 요원들이 수거해 본부로 가져왔다. 그리고 종이팩 수량과 무게를 측정해 포인트를 기입하고, 신청한 교환 선물을 담아 전달했다. 제법 복잡한 역할이지만 열심히 참여하는 요원이 생겼다. 교환 상품으로 재생 휴지, 키친타올, 각티슈, 재생지 연필을 준비했다. 코로나19로 쉬는 시간이 줄어들어 바빴을 텐데 요원들의 활약으로 활동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2021년 팩모아 캠페인은 약 2달 가량 진행했다. 시스템은 2020년과 동일한데 요원을 뽑아 분업화한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그래도 번거로운 일은 종종 생긴다. 종이팩은 가져왔는데 교환 통장을 가져오지 않았다거나, 종이팩을 가져왔는데 선물을 안 줬다거나 하는 소소한 민원이 꽤 발생했다. 민원을 처리하는 것 외에는 팩모아 요원들이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해 주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들의 일로 돌아가진 않았다. 담임 선생님들께 부담을 안 드리는 것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종이팩 수거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면 학생 자치회에 제안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계획을 하고 자치회 담당 교사와 관심 있는 선생님이 계획을 조금 다듬어 주거나 지원 방법을 찾는 식으로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 교사 혼자의 의욕으로 끌고 가는 것은 어렵다. 학생들 스스로 계획하면 참여도 의미도 더 살릴 수 있다. 종이팩 수거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학생 자치회에 제안하는 것을 꼭 생각해보자.

복도에서 교문 앞으로 옮겨 온 팩모아 본부


팩모아 캠페인을 진행하며 들었던 생각은 종이팩이 제대로 재활용 될 수 있도록 가정에서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학부모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종이팩을 모아서 학교로 가져오는 건 학생들이 할 수 있지만 모으는 게 끝은 아니다. 모인 종이팩을 다시 정리해서 재활용이 될 수 있도록 제지회사에 보내고, 제지회사로부터 되살림 휴지를 받아 순환시키는 과정이 필요한데 학생들의 활동에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었으면 했다. 일상에서도 종이팩 분리배출이 꾸준히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팩모아 학부모 동아리를 모집했다.


2년 간 팩모아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니 관심을 보이는 학부모님들이 생겨났다. e알리미에 올린 교내 학부모 동아리 모집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셨다. 그렇게 모집된 학부모들과 상의한 끝에 한 달에 두 번씩 등교시간에 맞춰 교문에서 종이팩을 수거하기로 결정했다. 교실 복도에 설치한 본부를 교문 앞으로 옮겨 팩모아 캠페인을 진행하는 셈이다.

보상 체계에도 변화를 줬다. 이전에는 보상 규칙에 맞춰 최대한 여러 번, 많이 받기 위해서 다양한 수단으로 종이팩을 쓸어오는 학생들이 있어 고민이었다. 특히 종이팩 분리배출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보상을 목적에 두는 것이 아니라 종이팩 재활용에 자신이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끼길 바랐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보상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2021년에는 종이팩 양에 따라 도장을 찍어줬다면, 2022년에는 참여할 때마다 도장을 하나씩 찍어준다. 거기에 종이팩을 10장 이상 가져오면 추가 도장을 하나 더 찍어준다. (1회에 최대 2개) 도장 10개를 넘기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려준다. ‘명예의 전당’은 학교 중앙 현관 게시판과 클래스팅 및 e알리미로 배포하는 팩모아 소식지에 포함된 코너다. 교환 상품은 재활용 휴지로 통일했다.

10명만 모이면 시작할 수 있는 팩모아 학급


가정과 연계한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정작 학교에선 어떻게 하지? 라는 질문이 생겼다. 집에서는 ‘비헹분섞’ 하고 교실 우유 급식은 그냥 버리는(실제로는 우유 상자에 담아 내놓는다) 상황을 고민하다 ‘팩모아 학급’을 생각했다. 학급 단위로 팩모아 캠페인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든 건데 학생 자치를 통했으면 해서 학급 별로 학생 10명 이상 신청하면 등록해주는 것으로 했다. 팩모아 학급을 신청하면 종이팩을 말리고, 모을 때 사용하는 바구니 2개와 반 학생 수 만큼의 와플을 반으로 보내준다. 참여 방법은 똑같다. 우유를 마시면 종이팩을 펼쳐서 깨끗하게 씻고, 말려놨다가 캠페인 하는 날 함께 낸다. 현재 4개 학급이 동참 중이다. 담임 교사가 주축이 되어 추진하기도 한다. 2학기에는 더 많은 학급으로 퍼져 나가길 기대한다.


팩모아 학급 신청을 받겠다고 했을 때 몇몇 선생님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급식 우유를 납품하는 업체에서 다시 일괄 회수하고 있어서 어차피 회수해가면 재활용 할텐데 굳이 학급에서 번거롭게 처리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보고 배운다”라는 말이 있다. 학생들은 교사가 가르치는 것보다 실제로 보고 경험하는 것에서 배운다. 올바른 분리배출, 비헹분섞(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기)을 아무리 가르쳐도 매일 아침 급식 우유는 마시고 내놓기만 한다면 그걸 배우는 것이다. 유통업체에서 수거해간 종이팩은 유업과 연결된 종이팩 수집업체나 재활용 업체로 보내져 일정 부분 재활용은 되겠지만(이런 식의 학교, 군대 등에서의 단체 급식이 아마도 종이팩 생산 업체의 재활용 의무율을 채워주고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정확한 종이팩 분리배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급식 우유를 마신 뒤 종이팩을 헹궈서 배출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팩모아 학급 환영 선물로 보낸 와플과 학급 참여를 하면서 느낀 뿌듯함이 소문이 나서 팩모아 학급이 많아지면 좋겠다.


결국은 귀찮음과의 싸움이다. ‘즐귀뿌귀’ 는 즐거운 귀찮음 뿌듯한 귀찮음을 줄인 말인데 기회가 될 때마다 사용하고 있다.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 지구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은 늘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다. 귀찮음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핵심 가치 아닐까? 이번 이야기 제목 “즐귀뿌귀 합시다!”도 바로 그런 의미다. 귀찮은 일이 즐거운 일임을, 내가 견뎌낸 귀찮음은 곧 뿌듯함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종이팩 음료를 마시면 펼치고, 깨끗이 헹궈서, 말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