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팩이라는 씨앗이 꽃을 피울 때까지
쓰맘쓰맘 ‘우윳빛깔 종이팩 프로젝트’

김현숙
쓰맘쓰맘 대표


종이팩 수거 보상프로그램조차 없던 포항시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중심으로 종이팩 재활용 캠페인을 시작, 지역 내 종이팩 수거체계를 만들어낸 단체 ‘쓰맘쓰맘(쓰레기에 맘 뺏긴, 쓰레기를 고민하는 맘)’은 쓰레기를 구출해 자원으로 만드는 일에 진심인 여성들의 모임이다. 지금은 ‘우윳빛깔 종이팩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종이팩 수거 활동에 힘쓰고 있지만, 이들의 시작은 해양 쓰레기 줍기와 제로웨이스트 활동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였던 김현숙 씨가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활동을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맘카페’였다. 그곳에 올린 글을 보고 삼삼오오 모여든 엄마들, 서로 얼굴도 모르던 사람들이 ‘쓰맘쓰맘’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한 시간이 벌써 4년째. 현숙 씨는 “저희의 사례가 소꿉놀이로 끝나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확장될 수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지만, 엄마들이 뿌린 씨앗은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 지역의 재활용 시스템 실태는?


종이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재단법인 숲과나눔에서 운영하는 시민 아이디어 지원사업 풀씨 4기로 활동하면서 부터다. 당시 3기로 활동 중이던 ‘카페라떼클럽’의 종이팩 재활용 캠페인에 깊이 공감했고, 그 마음이 ‘우리 지역의 종이팩 재활용 시스템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지역의 실태를 파악해본 결과, 타 도시에 비해 더욱더 종이팩 재활용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이팩을 가지고 가면 휴지나 종량제 봉투 등으로 교환해주면서 종이팩 재활용을 독려하는 ‘종이팩 수거보상제(교환사업)’조차 전무한 곳이 포항시였다.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모아도 소용이 없었다. 한살림, 자연드림 같은 생협에 종이팩 수거함이 있었지만, 초기에는 생협 이용자들만 접할 수 있었기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2020년 9월, 한살림과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수거함을 제작해 전국 매장에 배포했고, 비조합원도 상시 배출할 수 있는 경로가 생겼다. 그때부터 지자체의 자원순환 현황을 조사하던 쓰맘쓰맘은 같은 해 12월, 본격적으로 종이팩 활동을 시작했다.

“일단 넣어만 주세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쓰맘쓰맘 회원들의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었다. 급식과 간식으로 월평균 10회 정도의 우유와 주스가 제공되는 만큼 종이팩이 많이 배출되는 곳. 엄마들이었기에 가능한 발견이었다. ‘일단 모아라도 보자’는 마음으로 직접 수거함을 만들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찾아갔다. 처음 제안했을 때는 “헹구기만 하고 일단 펼치지는 않고 넣어두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어쩌겠나. 수거하러 가서 회원들이 직접 찢을 수밖에. 그러면 다른 학부모나 원장님이 와서 같이 찢어주시고, 직접 해보니 힘들다는 걸 알게 되고, 그 뒤로는 “무조건 처음부터 찢고 펼쳐서 헹군 후 수거함에 넣는다”는 규칙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났다. 덕분에 지금은 큰 어려움 없이 주기적으로 깨끗한 종이팩이 모인다.


처음에는 이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어차피 배출해서 버리는 거니 씻고 헹구기만 해주시면, 서로 조금씩만 나눠서 하면 쓰레기도 자원이 될 수 있다” “시범적으로 해서 잘 되면 여러 기관에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간곡히 부탁했다. 그때 도움이 된 것이 2019년부터 해온 ‘해양 쓰레기 줍기’ 활동이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도 엄마들의 활동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 종이팩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렵지 않게 수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방송의 힘도 컸다. <플라스틱 독립운동>(2020년 11월 6일 방영, KBS1TV)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아이들의 선생님들이 시청했고, 이후 제로웨이스트 활동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보관’과 ‘수거’를 동시에 해결!


하지만 참여하는 기관이 늘어날수록 엄마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개인의 차로 모인 종이팩을 생협으로 옮기다 보니 늘 한계에 부딪혔다. 그때 지역 나눔자활센터의 연락을 받았다. 쓰맘쓰맘의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알고 있던 담당자가 센터에서 제로웨이스트 사업을 시작한다며 조언을 구해온 것이다. 서로 의논하던 중 “자활센터에서 종이팩 적재 공간을 제공하겠다” “커피박을 수거해 재활용하는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왕 가는 거 카페에서 나오는 종이팩도 함께 수거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보관’과 ‘수거’라는 두 개의 큰 산을 함께 넘을 동지를 만난 순간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카페 등에서 쓰맘쓰맘과 자원봉사자들이 종이팩을 수거하고, 거점 수거지(자활센터)로 옮기면, 부산의 회수업체 ‘동신제지’가 한 달에 한 번 센터에 직접 방문, 적재된 종이팩을 수거하는 시스템은 그렇게 구축되었다.

커피찌꺼기와 종이팩을 동시에 수거하는 차량

환경 교육, 아이 교육이 부모 교육으로


시스템 구축 후 주목한 것은 ‘환경 교육’이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수거함만 전달하고 참여를 독려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쓰맘쓰맘의 회원 한 명이 사회환경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어린이집에서 어떤 교육을 하면 좋을지 함께 의논 후 ‘엄마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병행했다.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종이팩 수거함을 꾸미거나, 우유팩에 흙을 채운 뒤 씨앗을 심는 등 놀이가 접목된 활동을 경험한다. 아이들이 용기를 가져와 직접 소분해서 물건을 사보는 ‘쓰레기 제로 마트’를 열기도 했다. 이렇게 심은 환경 교육의 씨앗은 ‘알림장’ 시스템을 통해 각 가정으로 퍼져나간다. 아이 교육이 부모 교육으로 이어지는 소중한 통로가 여기에 있었다. 100% 재능 기부로 운영되는 환경 교육을 계속해나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직접 꾸민 알록달록한 종이팩 수거함

‘재활용 쓰레기통’에 불과하던 수거함을 정성스레 꾸며본 아이들은 ‘우리들의 소중한 종이팩 수거함’으로 인식의 변화를 경험한다. 재활용 물품을 넣을 때도 잘 정리해서 넣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 변화를 목격했기에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교육을 고민했고, 올해는 시범적으로 두 곳의 어린이집에서 6차시 교육을 진행했다. 이곳에서 쓰맘쓰맘은 한 차시에 3~40분씩, 종이팩 교육을 시작으로 해양 쓰레기, 일상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직접 짠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제대로 된 종이팩 수거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쓰레기 줍기 모임에서 시작해 환경 교육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간 많은 연결고리를 찾아낸 쓰맘쓰맘이지만 ‘종이팩 수거 체계 구축’의 고리는 여전히 찾기 어려운 숙제다. 포항시 자원봉사센터가 결합하면서, 종이팩 분리배출 참여 공간은 쓰맘쓰맘에서 관리하는 곳만 어린이집, 유치원 11곳과 카페 3곳, 자원봉사센터가 관리하는 어린이집, 유치원이 10곳으로 늘었다. 동참하는 공간은 계속 느는데 ‘만약 우리가 활동을 멈추면?’ ‘자원봉사자를 꾸준히 모을 수 없다면?’ 자문했을 때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 ‘우리가 모으지 않으면 종이팩은 내일부터 당장 쓰레기가 된다’는 생각에 마음 편히 아플 수도 없다. 쓰맘쓰맘이 유치원 10곳을 돌면서 한 달에 모으는 종이팩이 100kg, 포항시 전체의 어린이집, 유치원만 총 520개이니 그곳에서만 수거 체계를 마련해도 양이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양이 부족하다”는 말로 종이팩 수거를 회피하던 지자체는 이제 “쓰맘쓰맘의 회수체계가 정말 좋다” “잘하고 계신다”며 칭찬만 할 뿐이다. 이후 활동은 포항시가 제대로 된 종이팩 수거 체계를 갖춰나가라 요구하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모아낼 액션을 고민 중이다.


종이팩 재활용은 환경 운동의 첫걸음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환경 문제 해결은 누가 대신해주거나 도와줘서 되는 게 아니라, 시민 모두가 조금씩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쓰맘쓰맘이 경험한 종이팩 모으기 활동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우리 각자가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운동의 첫걸음’이었다. 그 처음을 목격한 쓰맘쓰맘은 이제 종이팩을 매개로 “삶 속에서 꾸준히 계속 실천할 수 있는 환경 수업”을 하고 싶다. “저희도 가정에서 작은 실천을 하고 있어요” “저희 아이도 OO유치원에서 종이팩 잘 모으고 있어요” 등등, 알림장과 맘카페에 달리는 댓글들은 쓰맘쓰맘이 심은 씨앗이 일상 속에서 어떤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지 생생히 전해주는 피드백이다. 그 피드백에 힘입어, 오늘도 쓰맘쓰맘은 바쁘게 움직인다. 어린이집에 모인 종이팩을 수거하고, 재미있는 환경 교육을 고민하고,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라” 목소리를 내고, 틈틈이 바다로 나가 해양 쓰레기를 줍는다. 그렇게 구출한 쓰레기로 쓰레기에 빼앗긴 마음을 채우는 쓰맘쓰맘의 활동가들, 아, 정말 바쁘다 바빠!


종이팩 재활용으로 환경 운동을 만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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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에 맘 뺏긴, 쓰레기를 고민하는 맘)